연산호가 녹아내렸다…제주 바다가 보낸 이상 신호

제주 남쪽 바다에는 ‘바닷속 꽃밭’이 있다. 형형색색의 연산호가 숲처럼 펼쳐진 곳이다. 그런데 2024년 여름, 이 연산호 정원의 일부가 이상하게 변했다. 몸이 부풀고, 줄기가 축 처지더니 끝내 형태를 잃고 무너져 내렸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김태훈 박사 연구팀은 제주 연산호 군락에서 나타난 이 현상을 세계 최초로 관찰·기록하고, 이를 ‘슬럼핑’이라고 이름 붙였다. 우리말로 풀면 ‘주저앉음’이다.
이번 연구는 제주에서 활동하는 환경단체 ‘파란’이 2024년 여름 현장 사진을 한국해양과학기술원에 공유하면서 시작됐다. 시민의 현장 기록이 과학 연구로 이어진 사례다.
풍선처럼 몸을 세우는 연산호
연산호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딱딱한 산호와 다르다. 단단한 골격이 거의 없고, 몸속에 물을 채워 형태를 유지한다. 풍선이 공기로 모양을 잡는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바닷물의 변화에 민감하다. 특히 염분이 크게 달라지면 몸속 물의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 연구팀은 연산호가 무너지는 과정을 다섯 단계로 정리했다. 먼저 몸이 비정상적으로 부풀고, 줄기가 힘을 잃는다. 이후 몸통이 아래로 처지고, 바람 빠진 풍선처럼 오그라든 뒤, 마지막에는 조직이 부서져 형태를 잃는다.
아름다운 바닷속 정원이 순식간에 주저앉는 것이다.
고수온과 저염분이 겹쳤다
연구팀은 2024년 여름 제주 남부 바다의 이례적인 환경에 주목했다. 당시 이 해역은 최근 10년 사이 가장 높은 평균 수온과 가장 낮은 평균 염분을 동시에 기록했다.
고수온만으로도 연산호에는 큰 스트레스다. 여기에 양쯔강에서 흘러온 대규모 담수의 영향으로 저염분 상태가 50일 넘게 이어졌다. 더운 바다에 오래 버티던 연산호가 염분 변화까지 겪으며 몸의 균형을 잃었을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연구팀은 저염분 스트레스를 계산하는 새 지표도 만들었다. 이름은 ‘DFW’다. 이 지표는 염분이 얼마나 낮았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가 얼마나 오래 지속됐는지를 함께 따진다. 분석 결과 2024년은 최근 10년 중 제주 연산호가 가장 심한 저염분 스트레스를 받은 해로 나타났다.
중요한 점은 ‘짧고 강한 충격’보다 ‘오래 이어진 변화’가 연산호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바다의 카나리아가 보낸 경고
연산호는 작은 환경 변화에도 빠르게 반응한다. 그래서 연구팀은 연산호를 ‘바다의 카나리아’라고 설명한다. 광산에서 위험을 먼저 알리던 카나리아처럼, 연산호는 바다 생태계의 이상 신호를 먼저 보여주는 존재라는 뜻이다.
제주 연안 연산호 군락은 천연기념물이자 해양보호구역으로 보호받는 중요한 생태계다. 이곳이 무너지면 단순히 예쁜 산호가 사라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물고기와 다양한 해양생물이 기대 사는 서식지가 흔들리고, 어업과 관광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공동 연구자인 유스트김 안나 박사는 “연산호를 지탱하는 힘은 결국 삼투압의 균형”이라며 “그 균형이 깨지면 몸이 부풀거나 오그라들어 터질 수 있는데, 정확한 원인을 밝히는 것이 다음 과제”라고 말했다.
김태훈 박사는 “이번 연구는 연산호 붕괴 현상을 세계 최초로 관찰·기록하고 발생 원인을 제시한 것”이라며 “천연기념물이자 해양보호구역인 제주 연산호 군락의 손실은 해양생태계의 교란뿐만 아니라 어업과 관광 등 지역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상 생태현상을 사후적으로 확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지속가능한 모니터링과 과학적 의사결정을 지원하는 AI 기반의 해양생태 감시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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