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뒤에 남는 것들…장난감 7100개가 드러낸 ‘재활용의 벽’

서울환경연합이 24일 시민 참여형 조사 캠페인 ‘잠자는 장난감을 찾습니다’ 결과를 발표했다.
시민 설문 865명, 실제 장난감 7,100개를 수거·분석한 조사다. 결론은 단순하다. 장난감은 ‘마음’의 문제보다 ‘구조’의 문제로 버리기 어렵다. 수거된 장난감의 65.85%가 2개 이상 재질이 섞인 복합재질 제품이었고, 시민의 96%는 장난감을 버리는 과정이 어렵다고 답했다.
서울환경연합은 2026년 완구류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 시행을 앞두고 “복합재질 설계 규제, 안전하고 재활용 가능한 배출 안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크리스마스 시즌, 장난감은 급증한다
크리스마스 전후는 장난감 소비가 집중되는 시기다. 서울환경연합은 유통업계 자료를 인용해 홈플러스 기준 지난해 크리스마스 기간 여아 완구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5% 증가했고, 가격비교 서비스 ‘에누리 가격비교’는 올해 12월 초 유아·완구 카테고리 매출이 전월 대비 111% 증가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많이 사지만, 얼마나 쓰고 어떻게 버리는지에 대한 공식 통계는 거의 없다. 이번 조사는 그 ‘공백’을 메우려는 시도였다.
2026년부터 장난감도 EPR…하지만 분리배출부터 막힌다
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EPR)는 제품·포장재 생산자에게 일정 수준의 재활용 의무를 부여하고, 이행하지 않으면 재활용부과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2026년부터 완구류와 소형 전기전자제품이 EPR에 포함되면서, 충전식·건전지 사용 장난감은 소형 전기전자제품 체계를 통해 별도 수거·재활용된다. 전자제품이 아닌 완구류는 분리배출함을 거쳐 선별장에서 재질별로 구분돼 재활용되는 구조다.
서울환경연합은 “제도가 시작돼도 제품 설계와 정보 제공이 바뀌지 않으면 실효성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짚었다.
1년 안에 버리고, 버리며 죄책감을 느낀다
설문에서 시민 64%는 장난감을 1년 이내 처분한다고 답했다. 다만 ‘처분’은 곧바로 ‘재활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96%가 폐기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고 했고, 가장 큰 이유는 ‘여러 재질이 섞여 분리배출 판단이 어렵다’(89%)였다.
이어 ‘분해가 어렵다’(57%), ‘재질·재활용 표시가 불명확하다’(46%)가 뒤따랐다. 그래서 장난감 처리 방식은 ‘지인에게 물려주기·중고거래’가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일반쓰레기 배출’이었다.
자유의견(400개 이상)으로는 “분리배출하고 싶지만 방법을 몰라 일반쓰레기로 버릴 수밖에 없어 죄책감이 든다”, “아이를 위해 산 장난감이 아이의 미래 환경을 해친다는 점에서 갈등을 느낀다”, “고쳐 쓰고 싶어도 수리할 곳이 없다” 등이 있었다. 현장에선 ‘선의’가 아니라 ‘가능한 선택지’가 부족했다.
복합재질이 기본, 전자장난감은 안전관리 사각지대
수거는 방문·택배 방식으로 진행됐고 시민 220명이 참여했다. 수거품은 기준에 따라 기록·분석한 뒤, 사단법인 트루로에 전달돼 재사용·재활용 과정을 거칠 예정이다.
분석 결과는 장난감의 ‘재활용 난이도’를 구조적으로 설명한다. 2개 이상 재질은 65.85%, 3개 이상 재질도 19.88%에 달했다. 플라스틱 외에 가장 많이 포함된 재질은 금속(54.63%)이었고, 스티커·고무·실리콘·종이 등 다양한 재질이 복합적으로 쓰였다. 재질이 많아질수록 분리배출 판단은 어려워지고, 선별·재활용 가능성도 떨어진다.
전자요소 포함 장난감 14.14%…표시는 ‘부족’
전체의 14.14%는 전자제품 장난감으로 분류됐다. 전자요소가 들어간 장난감은 폭발·화재 위험이 있어 일반 완구와 구분된 배출·수거 관리가 필요하지만, 상당수 제품에서 배출 방법이나 주의사항 표시가 명확하지 않았다고 서울환경연합은 밝혔다.
‘겉보기 플라스틱’의 함정…재질 파악 불가 25.54%
전체의 25.54%는 내부 확인이 어려워 정확한 재질 파악이 불가능했다. 겉으로는 단일 플라스틱처럼 보이지만 분해·분석 과정에서 전자부품이나 스티로폼 등 서로 다른 재질이 섞인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 시민이 분리배출을 포기하는 이유가 단지 ‘귀찮음’이 아니라 ‘확인 불가능성’일 수 있다는 대목이다.
해법은 있다…설계와 안내가 바뀌면 재활용도 바뀐다
서울환경연합은 이번 조사에서 ‘긍정 사례’도 확인됐다고 밝혔다. 100%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제작된 단일 재질 장난감, 분해 방법이나 재활용 불가 안내가 명확한 전자제품 장난감 등이었다. 즉, 장난감 재활용은 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와 정보 제공의 문제로 개선될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서울환경연합이 정부·기업·시민에 요구한 과제
서울환경연합은 EPR 시행 이후 현장에서 작동하는 재활용 체계를 만들기 위해 다음을 촉구했다.
정부에는 완구 폐기물 발생량 공식 모니터링, 복합재질 완구 생산 규제 및 재질 표준 정비, 시민 대상 배출·재활용 정보 제공 강화, 지자체 선별장 완구 선별 관리·감독 보완, 장난감 수리 인프라 구축을 요구했다.
기업에는 단일재질·분해 용이성 설계 도입, 수리 방법·부품·도구 정보 제공, 배출 방법의 명확한 표시, 전자제품 장난감의 별도 배출 안내 강화를 요구했다.
시민에게는 장난감 도서관·공유 서비스 활용, 중고거래·나눔, 재사용·재활용 단체·기업 이용, 장난감 EPR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주문했다.
무엇을 바꿔야 하나
이번 발표는 “분리배출을 잘하자”는 캠페인으로 끝나기 어렵다. 재질이 섞이고 분해가 막혀 있는 설계, 표시가 불명확한 정보, 전자요소 장난감의 안전관리 공백이 동시에 존재한다.
2026년 EPR이 시행되면 책임의 축은 생산자 쪽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제품이 ‘해체 가능’하게 설계되지 않고, 소비자가 ‘어디에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알 수 없다면 제도는 통계와 비용 정산에만 머물 수 있다. 장난감이 ‘아이의 즐거움’에서 ‘어른의 죄책감’으로 바뀌지 않으려면, 다음 시즌 전에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
지금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