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시민단체 “산불특별법, 피해지원 아니라 개발사업에 초점”
경남·경북 등 초대형 산불 피해 지역의 주민과 환경단체들이 국회를 통과한 ‘산불특별법’(경북·경남·울산 초대형 산불 피해 구제와 재건을 위한 특별법)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들은 “피해 주민을 위한 지원 조항은 살리되, 산림을 파괴하는 개발 특례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며 대통령실에 법안에 대한 재의 요구권 행사를 촉구했다.
지난 2일 오전 11시 30분 서울 전쟁기념관 앞. 경남·안동·산청 등 피해지역 시민·환경단체 80여 곳과 서울환경연합, 환경운동연합, 그린피스 서울사무소, 일부 조계종 사찰 등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산불특별법이 피해 회복보다 난개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산불특별법은 앞부분에서 금융·의료·심리지원, 소상공인·중소기업 복구비, 산림 회복 사업 등 피해 지원 대책을 담았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수록 산림투자선도지구 지정, 관광·휴양 개발 요건 완화, 인·허가 간소화, 각종 규제 특례 같은 개발 중심의 조항이 대거 포함됐다.
정은아 경남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피해지 벌목 뒤 산사태까지 겪은 마을에 지금 필요한 것은 골프장이 아니라 집과 학교, 공동체의 회복”이라며 “주민 참여 없이 설계된 개발 특례 중심 법안은 상처를 키울 뿐”이라고 비판했다.
문제가 되는 조항은 제30조다. ‘대형산불 피해지에서 위험목 제거사업은 산림 소유자 동의 없이 시행할 수 있다’고 규정했으나, ‘위험목’의 정의가 법문에 빠져 사실상 임의적 벌채가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제48조 인허가 의제, 제55조 토지수용, 제56·57조 산지·국토계획 특례, 제60조 환경영향평가 협의기간 단축까지 더해지면, 피해지가 곧바로 관광·휴양시설 개발로 이어지는 패스트트랙이 형성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경남 산청의 민영권 산청난개발위 대표는 “충분한 검토 없이 법이 시행되면 피해 구제는 뒷전이고 휴양시설·골프장 같은 대규모 개발로 주민들이 터전을 잃을 수 있다”며 “지난 7월 이재명 대통령도 산림정책 과학적 재검토 필요성을 언급했다. 대통령실이 재의 요구권을 행사해 제대로 된 특별법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위원회 구성도 문제로 꼽힌다. 제5조에 따른 피해지원 및 재건위원회 15명 중 환경부 공무원 1명을 제외하면 환경 이슈를 논의할 주체가 없다. 의사결정 구조 역시 법에 명시되지 않았다.
환경단체들은 이를 두고 “산불특별법은 피해지원이 아니라 개발사업 추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비판한다.
김수동 안동환경운동연합 대표는 “이번 법은 재난 치유가 아니라 ‘이 참에 개발하자’는 재난 자본주의의 전형”이라며 “기후위기 시대에 탄소흡수원인 산림을 파괴한다면 더 큰 재난을 불러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제적 약속과도 배치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는 “정부는 UN 생물다양성 협약과 국정과제로 2030년까지 육상 보호지역을 30%로 확대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이번 법은 그 약속에 역행한다”며 “대통령실이 현명한 선택을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공동 주최한 단체들은 공동성명서를 대통령실 민원실에 제출했다. 단체들은 대통령실이 재의 요구권을 행사하지 않더라도 시행령 제정 과정에서라도 개발 특혜 조항의 최소화·삭제를 요구하며 행동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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