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은 끊은 LNG 지원…한국만 ‘시대착오적’ 기후정책자금 쓰인다

한국수출입은행은 지난 2019년 Angelicoussis가 국내 조선사 앞으로 발주한 LNG선 2척의 수출거래를 지원하기 위해 219백만불의 여신을 지원했다.
[한국수출입은행]

정부가 '녹색 금융'으로 홍보해온 기후정책자금의 상당 부분이 사실상 화석연료 지원에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신장식 의원실이 23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기준 5대 공적금융기관이 승인한 기후정책자금 94조원 가운데 17조6천억원(약 20%)이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 금융에 투입됐다. 특히 해외 인프라 금융을 전담하는 한국수출입은행의 기후자금 가운데 36%가 LNG 선박 지원이었다.

문제는 LNG가 여전히 ‘친환경 선박’으로 분류돼 기후금융 지원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LNG는 석탄보다 온실가스 배출이 적다는 이유로 ‘전환연료’로 불려왔지만, 이는 연소 과정만 고려한 평가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LNG의 생산부터 운송·소비까지 전 과정을 고려하면 오히려 석탄보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을 수 있다. 미국 코넬대 분석에선 미국산 LNG의 전 생애 배출량이 석탄보다 33% 높게 나타났다.

국제해사기구(IMO)도 지난해부터 연료의 온실가스를 연소 과정이 아닌 전 생애주기로 평가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이 기준에서는 LNG가 더 이상 ‘친환경’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산업 측면에서도 LNG 운반선은 좌초자산 위험이 커지고 있다. 한국 조선업의 주력 품목으로 세계 시장을 이끌어왔지만, 지난해 말부터 글로벌 수요가 둔화되고 공급 과잉이 겹치면서 운임이 손익분기점을 밑돌고 있다.

이미 발주된 300척 이상의 선박이 향후 3년간 시장에 추가될 예정이어서 공급 과잉은 더 심화될 전망이다. 실제로 전 세계 LNG 운반선 신규 주문은 2024년 77척에서 올해 15척으로 급감했다.

환경 부담도 크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LNG 운반선 1척은 연간 1233만 톤의 온실가스 배출에 기여한다. 현재 건조 중인 350척이 내뿜는 배출량은 43억 톤으로, 인도의 연간 배출량을 넘어선다. 운항 과정에서 최대 15%의 메탄이 그대로 대기 중으로 방출되는 ‘메탄 슬립’ 현상도 심각하다.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80배 강력한 온실가스다.

한국수출입은행 CI
[한국수출입은행]

그럼에도 정부는 LNG 운반선 금융을 ‘기후금융’으로 홍보해왔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5월 “올해 기후금융 지원 규모가 51조7천억원”이라고 발표했지만, 실제로는 화석연료 인프라가 ‘녹색’으로 분류돼 공적 자금을 받고 있는 셈이다.

국제적으로는 이미 LNG를 화석연료로 규정하고 지원에서 배제하는 흐름이 뚜렷하다. 유럽투자은행(EIB), 영국 수출입은행(UKEF), 덴마크 수출신용기금(EIFO) 등은 2021~22년부터 LNG 운반선 지원을 중단했으며, BNP파리바 등 민간 금융기관도 LNG 인프라 투자를 포트폴리오에서 제외하고 있다.

신장식 의원은 “국제 기준에 맞는 진정한 녹색분류체계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며 “화석연료는 화석연료로 분류하는 상식적 기준이 있어야 그린워싱 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솔루션 신은비 연구원도 “기후금융을 늘린다고 하지만 화석연료 인프라를 여전히 녹색으로 보는 후진적 기준 때문에 근본 해결이 불가능하다”며 “해외에서는 이미 LNG를 화석연료로 분류하는데 한국만 시대착오적 기준을 고수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금융기관의 기후리스크 평가 의무화 등 ESG 정책에 찬성 입장을 밝혔지만, 현재와 같은 분류 체계에서는 정책의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설되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기준 개선에 나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