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식행정에 불과”…서울 자치구 가로수 계획 줄줄이 엉터리

서울환경연합은 지난 10일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서울시 가로수 계획 모니터링’ 결과를 발표했다.
[서울환경연합]

서울시 가로수 관리가 ‘계획은 있으나 내용은 비어 있는’ 요식행정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서울환경연합은 지난 10일 서울시공익활동지원센터에서 ‘서울시 가로수 계획 모니터링’ 결과 발표 기자설명회를 열어 “법이 정한 필수 항목을 빠뜨리거나 아예 공개조차 하지 않는 자치구가 다수”라며 주민 참여 거버넌스 확대를 촉구했다.

첫해부터 드러난 ‘위법·비공표’의 만연
올해는 지자체에 ‘연차별 가로수 계획’ 수립 의무가 처음 부과된 해다. 그럼에도 서울 25개 자치구 중 20곳이 도시숲법 시행령 제4조의2상 의무 기재사항 일부를 누락했다. 강남·강동·강북·구로·금천·노원·도봉·동작·서대문·서초·성북·송파·양천·영등포·용산·은평·종로·중구·중랑이 해당한다. 강서·금천·도봉·동작·양천 5개 구는 8월 14일 기준 구청 홈페이지에 계획이 ‘미공표’였다. 법이 정한 ‘내용’도, 주민이 접근할 ‘창구’도 빠진 셈이다.

‘한 해 계획’이 반년 지나서야…늑장 고시가 기본
연차별 계획은 연초 고시가 상식이다. 주민이 심기·가지치기·벌목 계획을 미리 알고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로·관악·중구·서초·마포·광진·용산·은평·송파 등 9개 구가 6월 이후에야 고시했고, 용산·은평·송파는 7월 이후였다. ‘주민 알 권리’와 사전 의견수렴의 토대를 스스로 허물어 놓은 것이다. 동작·도봉·강서·금천·양천은 아예 웹에서 확인 불가했다(8월 14일 기준).

내용은 빈약, 형식은 제각각…사후관리계획 ‘전무’
정보공개청구 결과도 난맥상이었다. 어떤 구는 도시숲위원회를 통과한 30~70쪽대 최종계획서를 냈지만, 다른 구는 3~11쪽짜리 요약본만 공개했다. 페이지 수가 많다고 내용이 충실한 것도 아니었다.

사업별 평가는 혹독했다. 네 분야 가운데 ‘생육환경개선’은 18점 만점에 2점(100점 환산 11.1점)으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더 심각한 건 근거와 사후관리의 부재다. 네 분야 모두 ‘사업근거’에서 최고 등급(매우 적절함)을 받은 구가 한 곳도 없었다. 평균 점수(최대 4점)는 가로수 조성 0.5점, 가지치기 1.1점, 병해충 관리 0점, 생육환경개선 0점이었다. 도시숲법 시행령이 ‘의무 항목’으로 정한 사후관리계획은 어느 사업에서도 제시되지 않았다. 계획이라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다.

공식 문서의 ‘오타·비논리’…심의 기능 작동했나
행정 효력을 갖는 고시문에서 기초 오류도 속출했다. 종로구는 상징 공간인 대학로 플라타너스를 ‘20m에서 10m로 가지치기’한다고 고시했지만, 종로구청은 서울환경연합 확인에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성동구는 가지치기 계획서의 ‘수고 현황’과 ‘수고 계획’을 뒤바꿔, 현재 15m 가로수를 20m로 ‘늘리겠다’는 황당한 문장을 남겼다. 기본적 검토조차 거치지 않은 채 위원회 심의를 ‘형식’으로 통과시킨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

서울만의 문제가 아니다—전국서도 ‘부존재’ 35%
서울환경연합이 서울 외 전국 181개 지자체를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진행한 결과, 64곳(약 35%)은 ‘연차별 가로수 계획’ 자체가 “부존재”라고 답했고, 2곳은 “비공개”였다. 사유는 도시숲위원회·관련 조례 미비, 용역 진행 중 등으로 제시됐다. 주무 부처인 산림청의 관리·감독 공백이 고스란히 드러난 대목이다.

市·구, 시민을 들러리로 세웠나
시민들은 이번 평가서에서 반복적으로 “의례적인”, “방향 없는”이라는 표현을 적었다. 서울환경연합 조해민 활동가는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20곳이 도시숲법을 위반하며 보여준 가로수 계획의 무성의함과 부실함은 시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며 “시민들이 직접 작성한 평가서에 ‘의례적인’, ‘방향 없는’이라는 표현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은 단순한 행정적 오류를 넘어 가로수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이 필요함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최영 생태도시팀장은 “가로수 계획 모니터링은 자치구의 잘못을 질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벌목이나 가지치기 같은 민원에 가려졌던 주민들의 관심과 애정을 가시화하고 새로운 가로수 관리 방식을 열기 위해 시작되었다”며 “올해 25개 자치구가 수립한 연차별 계획에 미흡한 점이 많았지만, 시행 초기인 만큼 오류와 모호함이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서울시는 이번 모니터링 결과를 단순한 지적이 아닌, 시민과 함께 가로수 계획을 수립하고 관리하는 새로운 거버넌스 모델을 구축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대로면 ‘도시숲’은 간판뿐…즉각 손봐야 할 과제
첫째, 법정 의무항목과 사후관리계획의 즉각 보완·재고시가 필요하다. 둘째, 고시 시점을 연초로 못 박고, 전 과정에 주민 의견수렴 절차를 의무화해야 한다. 셋째, 도시숲위원회 심의의 전문성과 책임성을 높여 ‘오타’와 ‘비논리’가 행정 고시에 스며드는 일부터 차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계획 공개는 ‘원문 전체 공개’를 원칙으로 하고 요약본은 보조자료로 전환해야 한다. 시민의 알 권리는 구청의 편의보다 앞선다.

서울환경연합은 이번 평가 결과와 보고서를 25개 자치구에 전달하고, “연차별 가로수 계획 수립 시 주민 참여 확대”와 “가로수 관리 방식을 주민과 함께하는 돌봄으로 전환”을 공식 요구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