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종과 금손이, 조선의 왕이 남긴 반려묘 사랑 이야기

고양이 '금손'을 아끼는 숙종의 모습을 표현한 AI 이미지

서울 서오릉 명릉(明陵) 인근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 있다.

숙종이 아꼈던 고양이 ‘금손(金孫)’이 임금의 죽음을 슬퍼하다 굶어 죽었고, 인원왕후가 그 고양이를 명릉 곁에 묻도록 명했다는 이야기다.

400여 년이 흐른 지금, 이 이야기는 ‘조선의 반려묘 사랑’으로 다시 조명받고 있다.

실록에는 없지만, 문집에는 남았다

‘숙종실록’에는 ‘금손’의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다만 숙종 4년(1678년) 5월 30일자 기록에 “홍천에서 머리는 하나인데 몸이 둘인 고양이가 태어났다”는 기이한 사례가 등장할 뿐이다.

하지만 숙종의 고양이 사랑은 다른 기록들에서 생생히 전해진다. 숙종이 직접 쓴 글 ‘매사묘(埋死猫)’ 그리고 김시민의 『동포집』과 이하곤의 『두타초』가 그 증거다.

숙종은 ‘매사묘’에 “내가 기르던 고양이가 죽어 사람으로 하여금 싸서 묻게 하였으니, 귀한 짐승이라서가 아니라 주인을 따르는 정을 아끼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다. 단순한 애완의 감정을 넘어, 인간과 동물의 ‘정(情)’을 주제 삼은 표현이다.

금빛 고양이, 금손이의 충성

문집 속 숙종의 고양이는 금빛 털을 가졌다고 한다. 김시민은 「금묘가(金猫歌)」에서 “궁중에 황금빛 고양이 있었으니, 임금께서 사랑하여 이름을 내리셨네. 밤이면 임금 곁에 웅크리고, 낮이면 뜰에서 햇살을 쬐었네.”라고 노래했다.

숙종이 세상을 떠나자, 금손은 밥을 먹지 않고 며칠을 울었다고 한다.

이하곤의 『두타초』에는 “금손이 삼일 동안 통곡하고, 스무 날 동안 울다가 굶어 죽었다”고 적혀 있다. 인원왕후가 “임금의 정이 미친 짐승이니 예를 다하라”며 명릉 근처에 묻도록 했다는 대목도 함께 전해진다.

이익의 『성호사설』 역시 “숙종대왕의 금묘는 주인의 죽음을 알고 따라 죽었다”고 적었다.
그는 “개나 말은 주인을 따른다는 말이 있으나, 고양이는 본디 사나워 주인을 잊기 쉬운 짐승인데, 이 고양이는 충의로 죽었다”고 덧붙였다.

숙종의 고양이는 그렇게 한 시대의 도덕 교훈으로까지 승화됐다.

조선의 왕도 ‘동물과 함께 살았다’

금손이 이야기는 단순한 궁중 미담이 아니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다시 묻는 오래된 기록이다. 숙종이 고양이를 묻으며 남긴 글에는, 인간 중심의 사고를 넘어서려는 마음이 엿보인다.

그는 고양이를 귀하다고 여기지 않았다. 대신 ‘주인을 따르는 마음을 귀하게 여겼다’고 했다. 이 짧은 문장은 오늘날의 반려동물 문화에도 통한다.

인간과 생명 그리고 ‘금손이’의 교훈

오늘날 한국에서 반려묘는 200만 마리를 넘어섰다. 그러나 여전히 길고양이 학대, 유기, 동물 보호소 과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조선의 한 왕이 남긴 짧은 글 속에서도 “사람과 함께 살았던 생명에 대한 존중”이 담겨 있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그보다 더 큰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금손이는 말하지 못했지만, 그의 행동은 분명한 메시지를 남겼다. 인간의 사랑은 종(種)을 넘어야 한다는 것. 생명은 모두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