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드는 건 세계 4위, 버리는 건 OECD 2위” 플라스틱 악순환에 빠진 대한민국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레고 블럭들
[픽사베이]

한국은 세계 4위의 플라스틱 생산국이자, OECD에서 두 번째로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버리는 나라다.

녹색연합이 최근 발간한 ‘2025 플라스틱 이슈리포트’는 “플라스틱 생산 감축이 없는 정부의 탈플라스틱 정책은 실효성이 없다”며 정부 정책의 구조적 한계를 강하게 비판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플라스틱 정책은 재활용 중심의 사후 처리에 머물러 있으며, 생산 총량 규제 없이 오염을 막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세계 4위 생산국, OECD 2위 소비국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플라스틱 생산량은 1,451만 톤으로 중국(9,794만 톤), 미국(3,857만 톤), 사우디아라비아(1,463만 톤)에 이어 세계 4위에 해당한다.

1인당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은 116kg, OECD 평균의 두 배 수준이다. 폐기물 배출량도 압도적이다. 2023년 한 해 배출된 플라스틱 폐기물은 1,487만 톤, 이 중 절반이 매립되고 19%가 소각된다.

재활용률은 고작 9%. 나머지는 하천과 해양으로 흘러가거나, 관리되지 않은 노천소각으로 대기 중에 퍼진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1인당 플라스틱 쓰레기 배출량(103.9kg)은 호주(110.1kg)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재활용’은 해법이 아니다

녹색연합은 정부가 “탈플라스틱”을 외치면서도 여전히 재활용과 분리배출 중심의 정책에만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재활용되는 플라스틱은 10개 중 1개에 불과하고, 가소제·난연제 등 각종 첨가제로 인해 반복 재활용 과정에서 유해물질이 더 많이 노출된다.

보고서는 이를 “독성물질을 재생산하는 순환 구조”라고 지적했다. 또 “정부가 플라스틱을 ‘쓰레기 관리 문제’로 한정하면서 생산 감축이라는 본질적 해결책을 외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매립·소각 중심의 ‘대기오염 공장’

플라스틱의 19%는 여전히 소각 처리되고 있다. 보고서는 “소각 과정에서 다이옥신, 수은, 카드뮴, 퓨란 등 발암성 물질이 배출되지만 ‘무해한 소각’이라는 신화가 퍼져 있다”고 꼬집었다.

관리되지 않은 폐기물의 57%가 야외에서 불태워지고 있으며, 이는 천식·폐질환 등 인체 피해뿐 아니라 탄소 배출의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각종 음료 뚜껑
[픽사베이]

탄소산업의 또 다른 얼굴, 플라스틱

플라스틱은 화석연료에서 비롯된다. 생산 과정에서만 매년 10억 톤의 CO₂, 가공 단계에서 5억 톤의 CO₂가 배출된다. 이는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4% 수준이다.

보고서는 “플라스틱 전 생애주기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석탄화력발전소 189기를 1년간 돌린 것과 맞먹는다”며 “플라스틱 산업은 탄소산업의 또 다른 얼굴”이라고 경고했다.

국제무대에서도 외면한 ‘생산 감축’

2024년 부산에서 열린 UN 국제플라스틱협약(INC-5) 협상에서 한국은 ‘1차 플라스틱 폴리머 감축 선언’에 서명하지 않았다. 100여 개국이 감축을 지지했지만, 개최국인 한국은 참여를 거부했다.

보고서는 이를 “석유화학업계의 입장을 대변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한국은 세계 4위의 에틸렌 생산 능력을 갖고 있으며, 석유화학 산업이 GDP와 수출을 떠받치는 구조적 이해관계 속에 있다.

“생산 감축 없는 탈플라스틱은 허구”

보고서는 정부가 2040년까지 2019년 대비 75% 감축 목표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 ‘탈플라스틱법’을 제정해 연도별 감축 목표를 명시하고 이행 상황을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1차 플라스틱 폴리머(원재료) 생산 감축을 시작점으로 삼아야 하며, 일회용품과 과대포장 제품을 최우선 퇴출 대상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경고한다. “정부가 플라스틱 산업의 이해를 대변한다면, 국민은 미세플라스틱을 마시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탈플라스틱의 시작은 생산 감축이다. 그것이 유일한 해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