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한파도 보험 시대…경기도는 치료비, 제주는 ‘일당’ 보전

경기도, 제주도 등의 지자체에서는 폭염·한파·집중호우 등 기후재난 피해를 보장하는 ‘기후보험’을 각각 운영하고 있다.
[챗지피티]

기후위기가 ‘환경 문제’를 넘어 개인의 의료비와 생계 문제로 번지면서 지방자치단체가 주민 대신 보험료를 내는 ‘기후보험’이 새로운 사회안전망으로 등장하고 있다.

가장 앞선 곳은 경기도다. 경기도민 약 1440만명은 본인이 신청하지 않았더라도 이미 기후보험에 가입돼 있다. 폭염으로 열사병이나 열탈진 진단을 받으면 15만원, 한파로 저체온증·동상 등을 진단받아도 15만원을 받을 수 있다. 올해부터는 기후재해로 응급실을 찾으면 10만원, 사망하면 300만원을 지급하는 보장도 생겼다.

폭염이 갈수록 강해지는 상황에서 이런 제도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올해 5월 15일부터 8월 4일까지 전국에서 발생한 온열질환자는 2441명, 추정 사망자는 21명이다. 사망자 가운데 13명, 62%가 80세 이상이었다.

문제는 보험을 만들어 놓는 것만으로 충분하냐는 점이다. 첫해 경기 기후보험은 5만건 넘게 보험금을 지급했지만, 보험료 대비 실제 지급액은 절반에도 못 미쳤다. 기후보험이 ‘기후복지’의 새 모델이 되려면 보장 확대와 함께 도민이 실제로 보험금을 찾아갈 수 있게 만드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청 안 해도 자동 가입…경기도 밖에서 쓰러져도 보상

경기 기후보험은 일반 민간보험과 구조부터 다르다. 보험료를 개인이 내는 것이 아니라 경기도가 일괄 부담한다.

올해 보험기간은 지난 4월 11일부터 내년 4월 10일까지다. 경기도에 주민등록이 돼 있으면 별도 가입 절차 없이 자동 가입된다. 등록외국인과 외국국적 동포도 포함된다. 보험기간 중 경기도로 전입하면 자동 가입되고 전출하면 해지된다. 사고가 경기도 밖에서 발생해도 사고 당시 경기도민이었다면 보장 대상이 될 수 있다. 보험금은 사고 발생일로부터 3년 안에 청구하면 된다.

올해 일반 도민의 보장은 크게 여섯 가지다. 온열질환과 한랭질환 진단비가 각각 15만원이다. 말라리아·일본뇌염·중증열성혈소판감소증후군·비브리오패혈증 등 기후 변화와 관련성이 있는 특정 감염병 10종은 진단 시 20만원을 지급한다.

폭염·폭우·폭설 등 기상특보가 내려진 날 사고를 당해 4주 이상 진단을 받으면 30만원의 사고위로금도 받을 수 있다. 올해 새로 도입된 사망위로금은 300만원, 온열·한랭질환이나 기후재해로 응급실에서 진료받으면 10만원이다.

기후취약계층은 보장이 더 두텁다. 시·군 보건소 방문건강관리사업 대상자에 올해부터 임산부까지 포함했다. 경기도가 계약 단계에서 산정한 취약계층은 22만1490명이다. 이들은 온열·한랭질환으로 입원하면 하루 10만원씩 최대 5일까지 받을 수 있고, 기상특보 때 병원에 갈 경우 1회 2만원씩 최대 5회의 통원비를 지원받는다. 기후재해 사고위로금도 일반 도민보다 기준이 낮아 2주 이상 진단부터 30만원이 지급된다.

개인 실손보험이나 다른 보험을 갖고 있어도 경기 기후보험은 중복 보상이 가능하다. 청구는 올해 사업자인 메리츠화재를 통해 할 수 있다.

5만1659건 지급했는데…5만건이 ‘병원 교통비’

제도의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고민거리도 보인다.

경기도가 지난해 4월 11일부터 올해 4월 10일까지 운영한 첫해 기후보험에서는 모두 5만1659건, 12억6070만원이 지급됐다.

숫자만 보면 이용자가 많아 보인다. 그러나 내용을 뜯어보면 5만건이 기후취약계층의 의료기관 교통비였다. 온열질환 진단비는 631건, 한랭질환 274건, 감염병 257건, 기후재해 사고위로금은 474건이었다.

특히 취약계층 교통비는 보험사가 지급하기로 한 10억원 한도가 보험기간이 끝나기도 전인 지난 2월 모두 소진됐다.

반대로 전체 보험금 지급률은 낮았다. 경기도가 첫해 보험료로 낸 돈은 26억6000만원이었지만 1년간 지급된 보험금은 12억6070만원으로 지급률은 47.4%였다. 경기도의회 결산 분석에서는 최종 지급률도 60~65%에 그칠 것으로 전망됐다. 올해 보험료는 보장을 확대하면서 32억원대로 올라갔다.

여기서 정책보험의 숙제가 생긴다. 보험은 매년 피해가 일정하지 않은 위험에 대비하는 제도인 만큼 보험료와 지급액을 한 해만 놓고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대규모 기후재난이 발생한 해에는 지급액이 급격히 늘어날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피해를 본 주민이 자신이 보험 대상이라는 사실조차 모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경기도의회도 온열질환이나 기후재해 사고를 당하고도 보험금 지급 대상인지 몰라 청구하지 않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기후보험의 실효성은 ‘얼마짜리 보험에 가입했느냐’보다 피해자가 얼마나 쉽게 돈을 받을 수 있느냐에 달린 셈이다.

제주는 “폭염에 쉬면 일당 보상”…경기와 전혀 다른 기후보험

다른 지역에서도 기후보험 실험은 시작됐다. 대표적인 곳이 제주다.

다만 경기와 제주 기후보험은 이름만 같을 뿐 성격은 상당히 다르다.

경기도가 도민의 건강 피해를 보장한다면 제주도는 폭염으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된 건설 일용직의 소득 손실에 초점을 맞췄다.

제주도는 공공이 발주한 1억원 이상 건설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퇴직공제 가입 일용직 근로자를 대상으로 ‘건설현장 기후보험’을 도입했다. 오후 1시 이전 폭염경보가 내려지고 현장 작업이 전면 중단되면 실제 일을 하지 못한 시간에 따라 최대 4시간분의 소득을 보전하는 방식이다.

여기에는 ‘지수형 보험’이라는 방식이 적용된다. 근로자가 폭염 때문에 얼마만큼 손해를 봤는지를 일일이 입증하는 대신, 기상청의 폭염경보와 작업 중단이라는 객관적인 기준을 충족하면 보험금을 주는 구조다.

제주도가 밝힌 2026년 상반기 보통인부 시중노임을 기준으로 실제 지급 시간급은 약 1만7210원이다. 최대 4시간이 인정되면 하루 약 6만8840원 수준이다. 올해 사업비는 3억3000만원이며 이 중 3억원가량을 보험업권 상생기금으로 충당한다.

금융위원회도 지난 3월 경남·경북·광주·전남·제주·충북 등 6개 지자체와 상생보험 협약을 맺었다. 이 가운데 명시적으로 ‘건설현장 기후보험’을 선택한 곳은 제주다. 다른 지역은 화재배상책임보험이나 휴업손해보험, 사이버보험 등을 선택했다.

따라서 현재 광역지자체 차원에서 모든 주민의 기후 건강피해를 직접 보장하는 경기형 모델은 여전히 독특한 사례이고, 제주는 야외 노동자의 소득을 보전하는 별도의 기후보험 모델을 시험하는 단계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서울·인천에도 비슷한 보험 있다…이름은 ‘시민안전보험’

다만 경기도 밖에 산다고 기후재난 보험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전국 대부분 지자체가 이미 ‘시민안전보험’을 운영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시민안전보험은 2015년 충남 논산에서 처음 시작돼 전국 228개 지자체로 확대됐다. 주민이 보험료를 내거나 가입 신청을 하지 않아도 지자체가 대신 보험에 가입해주는 구조는 경기 기후보험과 비슷하다.

서울의 올해 시민안전보험은 일사·열사를 포함한 자연재난으로 사망하면 2000만원, 후유장해가 발생하면 최대 1000만원을 보장한다.

인천 역시 자연재해 사망 보장에 일사병·열사병·저체온증을 포함하고 사망 시 2000만원을 지급한다.

차이는 분명하다. 시민안전보험은 화재·붕괴·교통사고·자연재난 등 폭넓은 ‘재난 사고’를 대상으로 하고 사망이나 후유장해 같은 큰 피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경기 기후보험은 열탈진이나 저체온증처럼 사망에 이르지 않은 기후 관련 질환의 진단 단계부터 현금을 지급한다.

기후위기가 거세질수록 보험도 바뀌고 있는 셈이다. 과거 재난보험이 ‘사고 뒤 복구’에 초점을 맞췄다면 경기 모델은 치료비, 제주 모델은 소득 손실까지 보장 범위를 넓히고 있다.

앞으로의 관건은 하나다. 지자체가 보험회사에 보험료를 내는 데 그칠 것인지, 아니면 고령자와 야외 노동자처럼 실제 기후위기의 타격을 먼저 받는 사람에게 보험금이 자동에 가깝게 전달되는 제도로 발전할 수 있느냐다. 기후보험의 성패는 가입자 1400만명이라는 숫자가 아니라, 폭염에 쓰러진 사람이 제때 얼마를 받았는지로 판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