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 바다 밑에 쌓인 ‘검은 탄소’…4년 만에 2.7배 늘었다

마리안소만 해양퇴적물 채집 모습
[극지연구소]

사람의 발길이 드문 남극 바다 밑에도 인간이 태운 화석연료의 흔적이 선명하게 남고 있다. 남극 세종과학기지 주변 해저 퇴적물에서 화석연료 사용으로 발생한 블랙카본의 비중이 코로나19 이전보다 크게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극지연구소는 하선용 박사 연구팀이 남극 킹조지섬 마리안소만과 맥스웰만의 해양 퇴적물을 분석한 결과, 화석연료에서 나온 블랙카본 비중이 2019년 6%에서 2023년 16%로 증가했다고 2일 밝혔다. 4년 사이 약 2.7배 늘어난 것이다.

블랙카본은 석유와 석탄, 목재 등이 불완전 연소할 때 생기는 검은 탄소 입자다. 대기 중에 머물거나 눈과 얼음 위에 내려앉으면 태양열 흡수를 늘려 빙하를 더 빨리 녹인다. 이산화탄소 다음으로 지구온난화를 가속하는 물질로도 꼽힌다.

연구팀은 2019년과 2023년 두 차례에 걸쳐 세종기지 인근에서 퇴적물 시료를 채취했다. 퇴적물에 포함된 블랙카본의 농도와 탄소동위원소 비율을 분석해 블랙카본이 어디에서 발생했는지 추적했다.

화석연료 유래 블랙카본이 급증한 배경에는 코로나19 이후 다시 늘어난 선박 운항과 기지 운영, 관광 활동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연구팀은 분석했다. 국제남극관광운영자협회에 따르면 2023~2024년 남극 크루즈 관광객은 약 4만3000명으로, 2019~2020년보다 약 2.3배 늘었다.

남극을 찾는 관광객과 선박이 늘면서 인간 활동의 흔적도 바다 밑에 함께 쌓인 셈이다.

다만 해저로 가라앉은 블랙카본은 대기 중 블랙카본과 다른 역할을 할 수 있다. 블랙카본이 퇴적물에 묻히면 수천 년 동안 분해되지 않는 장기 탄소 저장고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 세종기지 인근 퇴적물에서 발견된 블랙카본의 겉보기 연대는 약 4700~5120년으로 조사됐다. 남극 해저에 가라앉은 블랙카본이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보존되고 있다는 의미다.

하선용 극지연구소 책임연구원은 “해당 해역의 얕은 수심과 높은 퇴적 속도가 블랙카본을 빠르게 해저로 이동시켜 분해 전에 격리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남극과 북극의 블랙카본 발생원도 달랐다. 연구팀이 북극 노르웨이 스발바르의 해양 퇴적물을 비교 분석한 결과, 북극에서는 중위도 지역 산불 등에서 발생해 장거리 이동한 블랙카본이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남극에서는 현지 선박과 기지 운영 등 인간 활동의 영향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졌다.

논문 제1저자인 민준오 극지연구소 연수연구원은 “블랙카본이 극지에서 어떻게 이동하고 보존되는지 밝혀진 만큼, 극지 탄소순환에서 블랙카본의 역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환경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환경과학과 기술’ 6월호에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