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먹느냐가 지구의 운명을 결정한다” 세계 과학자들의 경고
기후위기와 식량 불평등이 동시에 심화하는 가운데, 전 세계 식습관을 바꾸면 매일 4만 명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2일 세계 과학자 70여 명이 참여한 ‘EAT-랜싯 위원회(2025 EAT-Lancet Commission on Healthy, Sustainable and Just Food Systems)’의 새 보고서를 인용해, 전 지구적 식단 전환이 인류의 건강과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함께 지킬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 보고서는 2019년 첫 제안 이후 6년 만에 다시 개정된 것으로, 최신 보건 자료와 기후 모델링을 통합한 ‘행성 건강식(Planetary Health Diet)’의 효과를 구체적으로 평가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류가 이 식단으로 전환할 경우 매년 1,500만 명, 하루로 환산하면 약 4만 명의 조기 사망을 예방할 수 있다. 또한 식품 시스템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2050년까지 절반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
식품 생산은 전 세계 온실가스의 약 30%를 차지하며, 삼림 훼손과 토양 황폐화, 수질 오염, 생물다양성 손실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행성 건강식’은 채소·과일·통곡물·콩류·견과류 등 식물성 식품을 중심에 두고, 육류와 유제품, 가공식품의 섭취를 최소화하는 방식이다. 완전한 채식주의를 강요하지는 않으며, 각 지역의 식문화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
보고서는 미국과 유럽의 경우 권장량보다 붉은 고기 섭취가 5~7배 많고, 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는 오히려 단백질 섭취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은 “식단 전환은 영양 불균형을 완화하고, 건강 형평성을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보고서에는 독일 포츠담기후영향연구소의 요한 록스트롬 소장과 하버드 공중보건대학의 월터 윌렛 교수가 공동 의장으로 참여했다.
록스트롬 소장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접시에 무엇을 담느냐가 인류의 건강, 기후 안정, 생물 다양성의 보존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윌렛 교수는 “이 식단은 결핍이 아니라, 맛있고 문화적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식”이라며 “건강과 환경을 함께 지킬 수 있는 유연한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식습관의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하며, 식품 체계를 전면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건강한 식품에는 세금을 부과하고, 채소·곡물·콩류 등 건강한 식품에는 가격 보조를 확대해야 한다는 제안이 포함됐다.
또한 가공식품 광고 제한, 식품 낭비 감축, 친환경 농업 전환, 농업 종사자 노동조건 개선 등 제도적 개혁 방안도 제시됐다.
위원회는 이러한 개혁에 연간 2,000억~5,000억 달러의 투자가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5조 달러 이상의 사회적 비용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번 보고서는 ‘행성의 한계를 지키는 식단’이라는 개념을 과학적으로 입증한 연구로 평가된다. 보고서는 “기후위기를 늦추고 생태계를 복원하기 위해선 에너지 전환만으로는 부족하며, 인류의 식탁이 바뀌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 ‘2024 농식품 주요통계’에 따르면, 국민 1인당 육류 소비량은 1980년 11.3㎏에서 2023년 57.5㎏으로 5배 이상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곡물 자급률은 1980년 55.4%에서 2023년 19.3%로 급락했다.
기후위기 대응과 건강 불평등 해소를 함께 이루기 위해서는, 학교급식과 공공기관 식단의 개선, 농업 보조금 구조의 전환 등 국가 차원의 식품정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 전문가들은 “기후정책의 출발점은 에너지가 아니라 식탁”이라며, “지구를 살리는 식습관이야말로 가장 근본적인 탄소중립 전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