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있어도 위험하다”…폭염 사망 10명 중 6명은 80세 이상
폭염에 가장 취약한 곳은 뜨거운 논밭이나 야외 작업장만이 아니었다. 80세가 넘으면 자신이 사는 집도 위험한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정부 통계로 확인됐다.
질병관리청 온열질환 응급실감시체계에 따르면 지난 5월 15일부터 8월 4일까지 신고된 온열질환자는 2441명이다. 이 가운데 65세 이상이 825명(33.8%), 80세 이상은 300명(12.3%)이었다. 단순 환자 수는 60대가 450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인구 10만명당 환자는 80세 이상이 12.5명으로 전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70대는 7.4명, 60대는 5.8명이었다.
사망 위험은 더 극명했다. 같은 기간 온열질환 추정 사망자는 21명인데, 이 가운데 13명(62%)이 80세 이상이었다. 온열질환 사망자 10명 가운데 6명 이상이 초고령층인 셈이다.
80세 넘으면 ‘집이 더 안전하다’는 공식도 깨졌다
이번 통계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발생 장소다.
전체 온열질환자 2441명을 보면 실외 작업장이 625명(25.6%)으로 가장 많았고 논밭 324명(13.3%), 길가 298명(12.2%), 집 172명(7.0%) 순이었다.
그러나 80세 이상만 따로 떼어보면 양상이 달라졌다. 300명 가운데 논밭에서 발생한 환자가 83명(27.7%)으로 가장 많았지만 길가 59명(19.7%)에 이어 집에서 발생한 환자가 54명(18.0%)이나 됐다. 전체 연령의 집 발생 비율 7.0%와 비교하면 약 2.6배다.
80세 이상 사망자 13명의 발생 장소도 논밭 4명, 집 3명, 길가와 주거지 주변 각각 2명 등이었다. 전체 온열질환 사망자 21명 가운데서도 집에서 숨진 사람이 5명에 달했다.
‘폭염에는 밖에 나가지 않으면 된다’는 기존의 대응만으로는 초고령층을 보호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정부 자료는 고령자의 경우 체온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데다 온열질환 초기 증상을 스스로 알아차리기 어려워 상태가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혼자 살거나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는 실내 온도가 올라가도 냉방기를 켜거나 외부에 도움을 요청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결국 폭염 위험은 단순한 ‘기온의 문제’를 넘어 나이와 주거환경, 돌봄의 문제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논밭만 보던 폭염 대책…이제는 안방까지 봐야
정부도 대응 방향을 바꾸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12일 첫 ‘폭염중대경보’가 발령된 이후 전국 보건소의 정보통신기술 융합 방문건강관리사업을 활용해 고령층 가정을 직접 확인하고 있다.
7월 13일부터 8월 4일까지 ‘오늘건강’ 앱을 통해 발송한 폭염 관련 문자는 12만6890건이다. 이 가운데 ‘위험’ 단계 경고는 2만5668건이었다. 같은 기간 방문건강간호사가 주민 가정을 직접 방문한 17만6514건 가운데 12만8283건(72.7%)은 냉방환경 점검이나 폭염 예방자료·물품 제공 등 폭염 대응과 관련된 방문이었다.
현장 사례를 보면 정책의 사각지대도 드러난다. 광주에서는 고령자 가정에 에어컨이 없는 사실이 확인됐고, 부산에서는 에어컨이 고장 난 가구를 애프터서비스센터와 연결했다. 충남에서는 전화 상담 중 어지러움을 호소한 고령자의 집을 긴급 방문했고, 경기에서는 폭염특보에도 밭일을 하다 이상 증상을 보인 고령자를 병원 치료로 연계했다.
폭염경보를 문자로 보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얘기다. 에어컨이 있는지, 있다면 제대로 작동하는지, 고령자가 실제로 냉방기기를 사용하고 있는지까지 확인하는 ‘생활 밀착형 대응’이 필요해졌다.
기후재난의 가장 약한 고리, 초고령층
이번 통계가 보여주는 것은 분명하다. 폭염 피해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발생하지 않는다.
건강하고 이동이 자유로운 사람에게 폭염경보는 ‘외출을 줄이라는 안내’일 수 있다. 하지만 체온조절 능력이 떨어지고 혼자 생활하거나 거동이 불편한 초고령층에게 폭염은 집 안까지 파고드는 생존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질병관리청은 “폭염과 열대야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80세 이상 어르신은 인구 대비 온열질환 발생이 가장 높고 사망자 비중도 큰 만큼 각별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도 “실외뿐만 아니라 실내에서도 온열질환 예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며 가족과 이웃에서도 어르신의 건강 상태와 실내 환경을 자주 확인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폭염 대책의 중심도 달라져야 한다. ‘한낮에 논밭에 나가지 말라’는 계도에서 한발 더 나아가야 한다. 누가 혼자 살고 있는지, 누구의 집에 냉방시설이 없는지, 고장 난 냉방기를 방치하고 있는 가구는 없는지까지 찾아내는 것이 초고령사회 폭염 대책의 핵심이 되고 있다.
올여름 통계는 폭염의 가장 위험한 장소가 반드시 뙤약볕 아래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어떤 노인에게는 문을 닫은 채 혼자 버티고 있는 작은 방이 논밭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