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은 플라스틱 섬”…환경단체·초등학생, 교육부에 친환경 문구 구매 촉구

보람초 6학년 학생 18명과 함께 친환경 문구·교구 우선 구매 제도 마련 촉구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환경연합]

서울환경연합과 세종환경운동연합이 3일 세종시 교육부 앞에서 세종 보람초등학교 6학년 라온반 학생 18명과 함께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의 친환경 문구·교구 우선구매 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이들은 “학교는 미래세대의 환경의식을 키우는 출발점이지만, 정작 교실 안은 재활용이 불가능한 플라스틱 문구로 가득하다”며 “교육 현장이 ‘플라스틱 소비의 현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하루에도 수십 개 버려지는 보드마카”…연간 1,200만 개 폐기 추정

서울환경연합과 ‘세종을바꾸는시민(세바시)’팀은 아름다운가게의 지원을 받아 지난 9월부터 세종시 초등학교 8곳에서 교실 문구류 폐기 실태를 조사했다.

그 결과, 한 달간 약 700개의 폐마카가 수거됐다. 이를 전국 초·중·고 1만1835개교로 단순 환산하면, 매년 약 1,200만 개 이상의 보드마카가 소각·매립되고 있는 셈이다.

세바시의 최화영 교사는 “환경교육을 하는 교사로서 매일 버려지는 마카를 보며 ‘이게 맞는가’라는 질문이 들었다”며 “칠판 위의 마카, 교구 상자 속 플라스틱, 포스터 테이프 하나까지도 교실은 지속가능하지 않은 구조 위에 서 있다”고 말했다.

“학교가 변해야 사회가 바뀐다”…학생들, 교육부·기업에 직접 호소

보람초 라온반 학생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직접 쓴 편지를 낭독하며 어른들에게 행동을 촉구했다.

정시아 학생은 “우리나라의 1인당 연간 플라스틱 배출량은 102kg”이라며 “학교부터 플라스틱을 줄일 정책을 만들어 달라”고 말했다.

또 변지유 학생은 “모나미 펜은 대한민국의 역사지만, 그 뒤에는 플라스틱 쓰레기의 산이 있다”며 “더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 달라”고 기업의 책임을 강조했다.

법은 있는데 관리가 없다…‘녹색제품 우선구매법’ 사문화 지적

‘녹색제품 구매촉진에 관한 법률’은 모든 공공기관이 친환경 제품을 우선 구매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학교 역시 법적 공공기관에 포함되며, 내년 1월부터는 사립학교까지 의무구매 대상이 확대된다.

그러나 교육부는 학교의 친환경 문구 구매 실적을 관리하지 않고, 관련 지침이나 평가 항목도 전무한 실정이다. 환경단체들은 “법적 기반이 있는데도 관리체계가 작동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행정 공백”이라고 비판했다.

“친환경 조달이 곧 환경교육”…학교부터 바뀌어야

환경단체들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교육부에 세 가지 개선안을 제시했다.

먼저 각급 학교 예산의 일정 비율을 친환경·리필형 문구 구입에 사용하도록 세부 지침 마련, 학교별 구매 실적과 폐기량 정기 모니터링 및 교육기관 평가 반영, 문구 제조업체의 리필형·재활용 제품 생산체계 구축이다.

서울환경연합 관계자는 “학교의 구매 기준이 바뀌면 산업 구조가 달라진다”며 “교실의 소비 전환이 곧 사회의 전환”이라고 말했다.

플라스틱 없는 교실, 가능할까

이번 기자회견은 단순한 요구를 넘어 ‘교실 속 플라스틱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린 첫 학생 중심 환경 행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라온반 학생들은 기자회견을 마치며 “환경교육은 칠판 위 수업이 아니라, 우리가 손에 쥔 마카 한 자루에서 시작된다”고 외쳤다.

학교가 녹색제품을 우선구매하는 일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다. 교실이 바뀌면, 소비가 바뀌고, 그 변화가 산업과 사회의 구조적 전환을 이끌 수 있다. 지속가능한 미래는 교실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