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해도 갈 곳 없다…국립생태원 야생동물 보호시설 ‘포화 직전’
불법 거래 현장에서 압수되거나 버려진 야생동물을 보호하는 국가 시설이 포화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 보호해야 할 동물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사육 공간과 전문인력, 운영 예산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야생동물 보호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립생태원에서 제출받은 ‘야생동물 보호시설 운영 현황’을 분석한 결과, 국제적 멸종위기종과 유기·방치 야생동물을 수용하는 시설 상당수가 수용 한계에 근접한 것으로 나타났다.
CITES 보호시설 수용률 92.4%
국립생태원이 2021년부터 운영하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동물 보호시설에는 올해 462마리가 머물고 있다. 최대 수용 가능 규모인 500마리의 92.4%다.
CITES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으로, 해당 시설에는 밀수나 불법 거래 과정에서 압수되거나 구조된 국제적 멸종위기 야생동물이 주로 들어온다.
유기·방치 야생동물 보호시설도 상황이 녹록지 않다. 전체 수용 규모는 138마리, 현재 보호 중인 동물은 101마리로 수용률은 73.2%다. 그러나 포유류만 보면 58마리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 가운데 53마리가 차 있어 수용률이 91.4%에 이른다.
문제는 갑작스럽게 대규모 구조나 압수가 발생할 경우다. 기존 시설이 가득 찬 상태에서는 신규 동물을 분리 수용하거나 감염 의심 개체를 격리할 공간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수의사 1명당 관리동물 9마리→94마리
보호동물 증가 속도를 전문인력 확충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올해 국립생태원 야생동물 관련 수의사는 정원 8명 가운데 7명, 사육사는 정원 14명 가운데 13명이 근무하고 있다. 두 직군 모두 정원을 채우지 못한 상태다.
업무 부담은 크게 늘었다. 수의사 1명당 평균 관리동물은 2021년 9마리에서 2024년 133마리까지 치솟았다. 올해도 94마리에 달한다. 사육사 1명이 담당하는 동물 역시 2021년 8마리에서 올해 44마리로 5배 넘게 늘었다.
국립생태원 수의사들은 기존에도 전시동물 진료와 방역·검역, 동물보호 정책 관련 업무 등을 맡아왔다. 여기에 구조·압수 동물 관리 업무까지 늘어나면서 진료와 검역 부담이 동시에 커진 셈이다.
보호동물 14배 늘 때 예산은 줄어
예산 흐름은 보호동물 증가 추세와 반대로 움직였다.
CITES 동물 보호시설 예산은 2024년 5억2400만원에서 지난해 4억1700만원으로 줄었고 올해도 같은 수준의 감액 기조가 이어졌다.
반면 CITES 보호동물은 2021년 33마리에서 올해 462마리로 약 14배 늘었다. 관리 대상은 폭증했지만 운영비는 오히려 감소한 것이다.
유기·방치 야생동물 보호시설 예산 역시 2024년 10억4800만원에서 지난해 8억3400만원으로 약 20% 감소했다. 다만 국회의 올해 예산 심사 과정에서 보호시설 확대 조성을 위한 20억원이 별도로 반영됐다.
신 의원은 해당 예산이 실제 사육공간 확대와 검역·진료시설 확충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호동물 사망 관련 통계 방식도 문제로 꼽혔다.
국립생태원은 현재 ‘폐사 및 기타’ 항목에 폐사뿐 아니라 폐사체 도입, 검역 불합격, 안락사까지 함께 집계하고 있다. CITES 동물 보호시설에서 이 항목에 포함된 개체는 2024년 258마리, 지난해 143마리, 올해 56마리다.
폐사와 안락사, 검역 불합격 등 성격이 전혀 다른 사유를 한 항목으로 묶으면 실제 보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동물이 죽었는지, 안락사가 얼마나 이뤄졌는지 등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신정훈 의원은 “보호시설은 단순히 동물을 수용하는 장소가 아니라, 구조된 야생동물의 생명을 지키고 질병 확산을 막는 최후의 안전망”이라며 “예기치 못한 반입 상황에 대비한 여유 사육·검역·격리공간 확보가 필수적이지만 사실상 포화 상태에 가까운 상황에서는 신규 동물의 적정한 수용, 감염 의심 개체의 분리, 질병 발생 시 신속한 검역 조치가 모두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동물은 늘어나는데 공간과 사람, 예산이 따라가지 못하는 구조를 더는 방치해선 안 된다”며 “수의사·사육사 결원을 신속히 해소하고, 보다 적극적인 예산 확보를 통해 사육·검역·격리 장비와 보호공간을 함께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