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는 없다?…한국 영화, 현실 반영은 여전히 부족

영화 '어쩔수가없다' 포스터

2025년 청룡영화상 후보작을 대상으로 기후위기 반영 여부를 점검한 결과, 후보 16편 가운데 단 1편만이 ‘기후현실점검테스트(Climate Reality Check)’를 통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폭염·폭우·산불 등 기후 재난이 일상이 된 시대에도 한국 영화 속 세계는 여전히 기후위기와 동떨어져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환경연합은 지난 11월 19일 제46회 청룡영화상 후보작을 테스트 기준으로 모니터링한 결과, <어쩔수가없다>만이 작품 속 세계에 기후위기가 존재하며 등장인물 역시 이를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 테스트는 영화 속 성평등을 측정하는 ‘벡델 테스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미국 비영리기업 ‘굿에너지(Good Energy)’가 제작한 것으로, 두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통과할 수 있다. 두 가지 조건은 △작품 속 세계에 기후위기가 존재하는가 △등장인물은 이를 인식하는가이다.

이번 모니터링 대상은 <어쩔수가없다>, <얼굴>, <좀비딸>, <파과>,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노이즈>,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3670>, <여름이 지나가면>, <보통의 가족>, <하이파이브>, <악마가 이사왔다>, <전지적 독자 시점>, <검은 수녀들>, <히든페이스>, <청설> 등 16편이다.

한편 단편영화상 후보작과 시대극(<하얼빈>, <전,란>, <승부>)은 테스트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테스트를 통과한 작품 <어쩔수가없다>는 제지회사 직원 최선출(박희순)이 제지 산업의 환경 파괴 비판을 인정하는 동시에 기업이 재생용지를 사용하고 베어낸 나무만큼 다시 심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영화 후반의 대규모 벌목 장면은 이 같은 설명이 ‘그린워싱’에 불과했음을 드러내며, 작품은 친환경을 내세우는 산업 논리의 허점을 역설적인 구조로 보여준다.

해당 작품을 모니터링한 시민은 “수많은 나무를 베면서 어쩔수가없다. 인간의 생존을 위해 자연이 필요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데 종이가 들어가는게 많으니 나무를 베는 행위들이 정말 큰뜻의 어쩔 수가 없다로 이어지며 기이하고 충격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기후위기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일상적 실천 여부도 함께 확인했다. 그 결과 자전거·대중교통을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장면은 25%(<청설>, <검은 수녀들>, <어쩔수가없다>, <3670>), 텀블러 등 다회용품 사용 장면은 12.5%(<청설>, <3670>)로 나타나 매우 제한적이었다.

서울환경연합은 “시민들은 폭염, 폭우, 산불 등 기후 재난을 매일 체감하고 있으나, 한국 영화는 이러한 현실을 거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테스트를 제작한 굿에너지는 “기후위기를 화면 위에 드러내는 일은 예술적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야기의 깊이를 더하고 관객들이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와 더 가까운 세계를 볼 수 있게 만드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서울환경연합은 2025년 청룡영화상뿐 아니라 2022~2025년 국내 주요 시상식(백상예술대상, 청룡영화상, 청룡시리즈어워즈)에 후보로 오른 한국 영화·드라마 151편을 97명의 시민과 함께 모니터링했다. 전체 결과는 2025년 11월 26일 서울환경연합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