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틈에 핀 주황빛 꽃…국내 최북단 ‘범부채’ 찾았다

범부채
[챗지피티]

주황색 꽃잎 위에 검은 점이 콕콕 박혀 있다. 멀리서 보면 표범의 무늬를 닮았다. 이름도 그래서 ‘범부채’다. 여름이면 화려한 꽃을 피우지만, 자연에서 스스로 살아가는 범부채를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산림청 국립수목원은 강원도 고성군의 현무암 지대에서 범부채의 국내 최북단 자생지를 새롭게 확인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알려진 범부채 자생지보다 훨씬 북쪽에서 발견된 것이다.

꽃잎에 표범 무늬…이름부터 독특한 여름꽃

범부채는 붓꽃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여름이 되면 주황색 꽃을 피우는데, 꽃잎마다 짙은 반점이 흩어져 있어 표범 가죽을 떠올리게 한다.

공원이나 정원에서 관상용으로 심은 범부채를 본 사람은 많다. 하지만 사람이 심지 않은 야생의 범부채는 사정이 다르다. 국내 자생지는 서남해안의 섬이나 내륙 석회암 지대처럼 비교적 특별한 환경에 제한적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범부채가 발견된 곳도 평범한 산지가 아니었다. 강원 고성군의 신생대 제3기 현무암이 지표면에 드러난 지역이었다.

국립수목원이 고성군 두 곳에서 확인한 범부채는 모두 16개체다. 이 가운데 14개체가 꽃을 피운 상태였다. 특히 두 자생지 모두 현무암이 갈라져 드러난 ‘절리’ 주변에서 발견됐다.

왜 하필 현무암 틈에서 살까

식물에게 땅은 단순히 뿌리를 내리는 공간이 아니다. 어떤 암석이 있는지, 흙의 두께는 얼마나 되는지, 물은 얼마나 잘 빠지는지에 따라 살 수 있는 식물의 종류도 달라진다.

현무암 지대는 흙이 깊지 않고 바위가 많이 드러난 곳이 많다. 여름에는 햇볕을 직접 받아 뜨거워지고, 물이 쉽게 빠져 건조해지기도 한다. 대부분 식물에는 까다로운 환경이지만 범부채처럼 이런 조건에 적응한 식물에게는 오히려 다른 식물과 경쟁을 피할 수 있는 보금자리가 될 수 있다.

이번 발견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범부채가 어디까지 북쪽으로 올라와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새로운 기준점이 생겼기 때문이다.

식물이 움직인다고?

식물이 걸어 다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주 긴 시간으로 보면 식물의 분포 지역은 계속 움직인다.

씨앗이 바람이나 동물, 물을 따라 이동하고, 기온과 강수량이 달라지면 살아남기 좋은 지역도 변한다. 기후변화로 기온이 올라가면 남쪽에 살던 식물이 점차 북쪽이나 높은 산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연구자들은 이번 고성 범부채 자생지가 앞으로 범부채 개체군의 이동 경로와 기후변화에 따른 식물 분포 변화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범부채와 가까운 식물인 대청부채가 어떻게 갈라져 진화했는지를 연구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있다.

“어디에 사느냐”도 중요한 생물 정보

이번 발견은 2026년부터 2035년까지 진행되는 ‘제2차 DMZ일원 산림생물다양성 조사’ 과정에서 이뤄졌다. 연구진은 사람이 옮겨 심은 범부채가 아니라 자연적으로 살아온 야생 개체군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신현탁 국립수목원 DMZ산림생물자원연구과장은 “이번 발견은 현무암 지대의 특수한 환경이 갖는 식물자원적 가치를 다시 한번 확인한 사례”라며 “현무암 지대 식물자원에 대한 정밀 조사를 통해 DMZ 일원 산림생물자원의 현지 내·외 보전·관리 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범부채 16포기의 발견은 숫자만 보면 작아 보인다. 하지만 생태 연구에서 한 식물이 ‘어디까지 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한 송이 꽃이 기후와 지질, 진화의 역사를 함께 보여주는 작은 지도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올여름 강원 고성의 검은 현무암 틈에서는 주황색 범부채가 꽃을 피웠다. 표범 무늬를 닮은 그 작은 꽃이 우리에게 새로운 자연의 경계선을 알려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