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북미 월드컵, 폭염·호우가 경기 멈출 수도

2026년 북미 월드컵 상징 이미지
[국제축구연맹]

2026년 북미에서 열릴 FIFA 월드컵이 기후위기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경고가 나왔다.

축구 환경단체 ‘풋볼 포 퓨처’와 ‘커먼 골’이 낸 보고서 ‘피치스 인 페릴(Pitches in Peril)’은 개최 도시의 기후 위험을 종합 점검한 결과, 16개 경기장 가운데 10곳이 “극심한 열 스트레스” 위험군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로이터(Reuters)는 이 보고서를 인용해 “지금과 같은 준비로는 2026년이 북미에서 여름에 치르는 마지막 월드컵이 될 수 있다”고 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또 보고서는 “2050년까지 북미 개최 경기장의 거의 90%가 폭염 대응을 위한 시설 적응이 필요하고, 3분의 1 경기장은 물 수요가 공급을 맞먹거나 초과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번 평가는 2026년 월드컵 전 경기장을 대상으로 한 첫 ‘IPCC 정합(align) 기후위험 평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더 나아가 2030년(모로코·스페인·포르투갈 공동개최)과 2034년(사우디아라비아) 대회의 잠재 위험도 함께 짚었다.

이미 안전선을 넘은 경기장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캐나다·멕시코 3개국의 16개 경기장 중 14곳이 2025년에만도 최소 세 가지 주요 기후 위험(극심한 더위, 경기를 불가능하게 만드는 집중호우, 홍수)에서 안전 임계치를 초과했다.

특히 13곳은 여름마다 최소 하루 이상 FIFA가 음수(물) 휴식 도입 기준으로 삼는 ‘WBGT 32℃’(습구흑구온도, 직사광선에서의 인체 열 스트레스 지표)를 넘겼다.

애틀랜타, 댈러스, 휴스턴, 캔자스시티, 마이애미, 몬테레이 등은 이 기준을 ‘두 달 이상’ 초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심각한 것은 10개 경기장이 여름마다 최소 하루 이상 ‘WBGT 35℃’를 기록한다는 점이다.

이는 기후과학자들이 “인간 적응 한계선”으로 보는 수준이다. 댈러스는 31일, 휴스턴은 51일에 달한다. 일부 경기장은 개폐식 지붕 등으로 열을 완화하려 하지만, 보고서는 “경기장 밖 이동·대기 동선과 도시 전반의 폭염·침수 위험은 여전히 남는다”고 지적한다.

클럽월드컵이 보여준 ‘예고편’

올해 미국에서 열린 클럽월드컵은 ‘폭염과 뇌우가 동시에 덮친’ 경기 현장을 보여줬다. 선수들은 “도저히 뛰기 힘들다”고 호소했고, FIFA는 급히 냉풍기, 그늘 벤치, 추가 음수·쿨링 브레이크를 도입해야 했다.

보고서는 “월드컵에서도 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며 경기 일정의 시간대 조정, 야간 경기 확대, 관중 대피·급수 체계 강화 등 구체적 적응 대책을 권고했다.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남자대표팀이 지난 7일(한국시간) 미국 뉴저지주 해리슨의 스포츠일러스트레이티드 스타디움에서 2026년 북중미월드컵을 앞두고 미국과 친선전을 가졌다.
[대한축구협회]

“겨울 개최나 더 시원한 지역 이동…과감한 결단 필요”

리즈대 ‘프리스틀리 기후미래센터’ 피어스 포스터 소장은 “앞으로 몇 년간 위험은 더 커질 것”이라며 “겨울 개최나 더 시원한 지역으로 대회를 옮기는 등 과감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스페인 출신 2010년 월드컵 우승자 후안 마타는 “축구는 늘 우리를 하나로 모았지만, 이제는 우리가 무엇을 잃을지 상기시킨다”며 지난해 스페인 발렌시아의 큰 홍수를 언급하며 “더는 기후위기를 외면할 수 없다”고 했다.

정책·산업의 과제: 2040 넷제로, 신뢰할 감축계획, 적응 기금

보고서는 축구 산업 전체에 2040년까지 탄소 순배출 ‘넷제로’ 달성과, 이를 뒷받침할 신뢰성 있는 탈탄소 계획 공개를 촉구했다. 동시에 개최국·대회 주최 측이 폭염·폭우·홍수에 대비한 ‘적응 기금’을 마련할 것을 제안했다.

팬들의 기대도 분명하다. 북미 3개국 팬 3600명 조사에서 91%는 “2026 월드컵이 지속가능성의 본보기가 돼야 한다”고 답했다.

2030·2034 대회도 ‘안전 지대’ 아냐

보고서는 2030년(모로코·스페인·포르투갈)과 2034년(사우디아라비아) 대회 장소도 고온·물 스트레스·급격한 호우에 취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 남부와 북아프리카는 최근 몇 년 사이 기록적 폭염과 산불, 물 부족을 겪었고, 중동 지역은 여름 WBGT가 이미 위험 수준에 근접하는 날이 잦다.

대회 시기·시간대 조정, 도심 녹지·그늘 인프라 확충, 대중교통 냉방·대피 체계, 경기장·팬존의 저에너지 냉각 설비 등 ‘전 도시권’ 적응이 핵심 과제로 떠오른다.

월드컵은 ‘세계의 축제’이자 우리의 일상과 맞닿은 문화다. 하지만 폭염과 홍수는 선수와 관중의 안전을 흔들고, 대회를 지탱하는 도시 시스템 전반을 시험한다. 보고서가 말하는 해법은 복잡하지 않다. 배출은 과감히 줄이고(2040 넷제로), 도시와 경기장을 현실에 맞게 바꾸는 것(적응)이다.

시간이 문제다. 대회 일정표는 이미 나와 있고, 기후는 기다려주지 않는다.